[인왕산에서] 마흔 살의 성찰, 다시 현장에서 노동의 미래를 묻습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2026년 4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서른한 돌을 맞습니다. 그 뿌리인 한국노동교육협회로 부터 헤아리면 어느덧 마흔 해의 시간을 쌓아온 셈입니다. 1986년 척박한 토양에 심었던 민주노동의 씨앗은 이제 한국 노동사회를 지탱하는 굵은 나이테가 되었습니다. 지나온 40년은 연구소의 역사를 넘어, 이 땅의 노동자들이 일궈온 투쟁과 희망의 기록입니다.
마흔 살의 무거운 질문,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마흔이라는 나이는 자부심만큼이나 무거운 성찰을 요구합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 후 우리 노동사회는 크게 성장했지만, 급변하는 시대의 파고 앞에서 "지금 우리의 연구는 고 립된 노동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당히 답하기 어렵기 때문입 니다. 우리는 오늘, 현장의 거친 숨소리보다 정제된 이론의 안온함에 머물지는 않았는지 뼈 아프게 되돌아보며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맵니다.
『노동사회』의 복간, 형식의 벽을 허물고 소통의 폭을 넓히겠습니다
창립 40주년을 맞아 잠시 멈추었던 회보 『노동사회』를 격월간으로 다시 펴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연구소의 재정 상황을 고려해 예전 같은 종이 책자 대신 '온라인 PDF 파일'이 라는 담백한 형식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후퇴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입니다. 종이 책자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더 널리, 더 빠르게 노동의 의제를 나누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내려받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공론장이 되고자 합니다. 투박한 파일 속에 담긴 우리 의 진심이 현장의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더 깊숙이 가닿기를 소망합니다.
대전환의 파도 앞, 새로운 사회적 연대를 제안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87년 체제 이후 가장 거대한 전환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AI와 디지털 전환은 노동의 정의를 뒤흔들고 있으며, 기후위기는 생존을 건 '정의로운 전환'을 압 박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와 심화되는 양극화는 우리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 합니다.
이 엄중한 과제들 앞에서 노사정은 과거의 대립이라는 낡은 외투를 벗어 던져야 합니다. 경영계는 기술의 이익을 사회적 책임으로 나누어야 하며, 노동계는 조직된 울타리를 넘어 소외된 노동자를 품는 큰 연대를 실천해야 합니다. 정부 또한 갈등의 관리자를 넘어, 단 한 명의 노동자도 소외되지 않는 촘촘한 사회안전망의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40년, 당신의 곁에서 걷겠습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이제 다시 '함께 길을 찾는 곳'이 되겠습니다. 40년 전 첫 마음으로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비록 투박한 PDF 파일로 전하는 글이지만, 그 안의 통찰만큼은 여러분의 일터와 삶터에서 밝은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걷는 이 길이 노동이 존중받고 사람이 중심 이 되는 세상을 향한 단단한 징검다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2026년 새봄 인왕산에서
출처: 『노동사회』 제204호(2026년 제1호) *왼쪽 출처를 클릭하여 통권 PDF 내려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