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조선산업에 부는 노동운동의 새바람

노동사회

위기의 조선산업에 부는 노동운동의 새바람

구도희 0 5,351 2015.07.07 12:22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진원지였던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5월4일 현대중공업노동조합과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측이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을 침해할 경우에 대비해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감시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서 지난 5월14일 현대중공업노조 사무실 앞에서는 원하청 노동자의 공동 집회가 열렸다. 사내하청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권유하고, 또 원하청 노동자의 공동투쟁을 결의하는 자리였다. 지난 20년간 심화돼 온 정규직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사이의 분열을 넘어서서 같은 배를 만드는 조선소 노동자로서 힘을 모아 함께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뜻깊은 자리가 만들어졌다.  
 
조선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첫 본격 연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연대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그동안 여러 산업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조선산업 노동운동에서는 그동안 직영 정규직 노동조합이 하청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대리교섭을 해왔을 뿐, 이렇다 할 연대 활동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적극 지원하고 나선 것은 조선산업 노동운동에서 정규직 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추진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대활동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현대중공업노조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지난 2014년에 공동으로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었다. 이에 의하면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싶어도 해고 등 탄압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서 노조에 쉽게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개인적으로 처리한 비율이 절반을 넘었으며, 근로기준법상의 휴업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고 무급휴업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직영 정규직 노동자들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확보해 온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채 차별과 고용불안정을 감수해 온 것이다. 사내하청노동자가 4만 명이 넘는 현대중공업에서 이러한 차별과 무권리 상태에 눈감고서 노동운동을 입에 올리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들려온 이야기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연이은 희소식, 조선업종 노조연대의 출범
조선업종 노조연대의 출범 또한 연이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난 5월30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 노동조합, 삼성중공업노동자협의회 등 대형조선소의 기업별 노동조합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의 현대삼호중공업·한진중공업·성동조선·STX조선·신아SB 지회 등 9개 조선소의 노동조합이 거제에 모여 조선업종 노조연대를 출범하고 전국조선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출범선언문에서 정부에 조선소 중대재해 근절, 중형 조선소 활성화, 조선소 해외매각 규제 등을 요구하고, 사용자에게는 고용안정 및 총고용보장, 위험성 평가 실시 등을 요구하였다. 지난 2009년 조선산업 불황 이후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감원의 가장 손쉬운 대상이 되어 왔다.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에서도 사내하청업체의 폐업과 감원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중형조선소 직영 정규직 조합원들의 고용안정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대형조선소의 직영 정규직 조합원들이 기업별 울타리에 갇혀서 자신들의 임금과 고용만을 추구한다면 노동조합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사회적인 지지를 얻기가 더욱 어려운 조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중공업노조가 사내하청노동자의 조직화를 적극 지원하고, 또 대형조선소와 중형조선소의 노동조합이 힘을 합치기 시작한 것은 위기에 처한 조선산업의 노동운동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업종 노조연대는 앞으로 기업별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임금, 단체협약 갱신 교섭과정에서 보조를 맞추려고 한층 더 노력할 것이다. 그동안 조선소에서는 기업별 노조 조직형태와 단체교섭을 통해 정규직 조합원의 근로조건이 결정되고, 하도급단가를 배경으로 개별적 근로계약을 통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이 결정되는 이중구조 하에서 직영 정규직과 사내하청노동자 사이의 근로조건 격차가 지속되어 왔다. 조선업종 노조연대는 노동시장의 차별을 제거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하고 실행해나가는 데도 한층 더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나갈 필요가 있다.   
 
분열과 기득권이라는 산을 넘어야 
정규직 노동자와 사내하청노동자 사이에 연대가 구축되고, 강화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고 함께 투쟁하다가, 양 집단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심지어는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버린 사례도 적지 않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튼튼한 연대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용의 차별적·이중적 관리를 계속 추구해 온 사용자측에서 이를 원하지 않으며, 다양한 분열을 만들어내고자 계속 시도할 것이다. 차별적·이중적 고용관행이 지속되어 온 결과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도 다양한 불신과 갈등의 요소가 잠재해 있다.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한 현대중공업 정규직 조합원들의 태도는 현대중공업노조가 실시한 설문에 관한 응답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노동조합의 이해대변 형태에 관한 질문에 대해 ‘조합원의 이해만 대변하면 된다’는 답변이 조사대상자 2,161명 가운데 204명(9.4%), ‘조합원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다른 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1,380명(63.9%), 그리고 ‘조합원의 이익과 충돌하더라도 다른 노동자를 대변하거나 연대하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응답이 282명(13.0%)이었다. 
사내하청노동자의 조직화를 정규직 노동조합이 지원하는 일은 정규직 조합원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사안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권 확보라는 노동운동의 기본 대의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정규직 조합원이 뜻을 함께 할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과 격차를 줄여나가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문제가 대두되면 많은 정규직 조합원들이 우려를 제기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사용자측의 차별적·이중적 고용전략 하에서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아 온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자연스러운 태도이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노동시장 내에서 경쟁하는 관계로 규정하게 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연대를 지속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노동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현해나감으로써 차별적· 이중적 고용구조를 해소해나가는 것이 노동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정규직 노동자의 장기적인 이익과도 부합한다. 또 지난 조선산업의 불황은 기업수준이든, 정부수준이든 노동자들의 참여 없이는 노동자의 일자리와 생활을 지키는 정책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현대중공업만이 아니라 다른 조선소에서도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촉구하는 2차, 3차 집단 노조가입 운동이 꾸준히 전개되고, 다 함께 노동기본권을 확보한 산업 시민으로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확대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불황과 위기의 시기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선두에 섰던 조선소 노동자들이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혜를 발휘하여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나가기를 기대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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