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민주노총에게 남겨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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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민주노총에게 남겨진 과제

노광표 4,451 2020.08.10 09:00
작성자: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민주노총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결국 대의원대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개최된 제71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합의안에 대한 반대가 805표(61.4%)로, 찬성 499표(38.1%)를 앞섰다. 합의안이 부결되자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사퇴를 선언했고, 올해 12월 임원선거까지의 임시지도부를 맡을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공권력 등의 탄압으로 초래된 지도부 공백이 아니라 조직 내부 요인으로 지도부 사퇴를 맞이한 것이다. 오늘날 민주노총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런데 지도부 사퇴 및 비상대책위 구성은 익숙한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사회적 대화 추진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무덤이었다. 사회적 대화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활화산과 같은 쟁점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추진된 1998년 2.6 사회적 합의안에 대한 집행부 불신임, 2005년 2월 당시 이수호 집행부의 사회적 대화 추진을 둘러싼 대의원대회 폭력 사건, 그리고 이번에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안 거부까지,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그 뿌리와 맥락은 같다.
다른 입장에 대한 맹목적 내 불신은 증오를 낳고 배제의 정치를 강화할 뿐이다. 불행하게도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입장 차는 이번에도 내부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 한 달 이상 민주노총 조직이 뒤흔들리고 조합원 직선으로 선출된 위원장이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태에 대한 조직 내 성찰이 없다면 민주노총의 앞날은 밝지 않다. 도대체 사회적 대화가 무엇이기에 조직이 마주 보고 달려오는 기차와 같은 결말을 보게 만드는가? 우선 인식해야 할 것은 합의안에 찬성한 대의원들은 노동자의 이익을 팔아먹는 배신자가 아니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 대의원들도 맹목적인 투쟁만을 고수하는 투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지난 석 달을 복기해 보자.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과정’을 돌아보면……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과거의 사회적 대화와는 사뭇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이 특징을 얼마나 이해하고 공유하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이 문제는 향후 민주노총 운동 방향 설정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초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의 요구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도 민주노총에게 사회적 대화에 나서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정부가 호응한 가운데 한국노총과 경총의 보이지 않는 반대 속에서 추진되었다. 2019년 1월 28일 대의원대회 결정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가 봉쇄된 민주노총 지도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정, 노사 간 중앙차원의 협의와 교섭을 추진했다. 이번 위기가 조직노동보다는 미조직, 영세사업장, 특수고용노동자 그리고 자영업자들에게 너무 가혹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추진은 4월 29일 중앙위원회에서 민주적 논의 과정을 통해 결의되었다.  
둘째, 위기의 성격 및 노동의 대응 전략을 살펴봐야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사회적 대화가 갈지자 행보를 보였던 것은 주체인 노사정 간 신뢰 부족, 그리고 합의 이행의 사회적 토대가 취약했기 때문이다. 노사 모두 대표조직들이 중앙집권화가 아닌 분산된 형태를 취하고 있고, 친노동 정당은 국회에서 소수당이라는 조건 속에서 사회적 대화가 추진되었다. 이 때문에 성공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런데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노동조직이 사회적 대화에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레지니(Regini)가 지적하듯 “경제위기 등의 이유로 단체교섭보다는 정치시장의 비중이 확대되는 경우”가 지금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코로나19 위기는 과거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달리 그 책임을 특정 집단에 묻기 어려운 특징을 갖는다. 정권과 대기업만이 아닌 시스템 자체가 위기의 원인이며, 우리 모두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한 단일 전선은 형성되지 않았고, 모두가 국가와 정치의 역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코로나 위기에 따른 일자리와 노동의 어려움은 어떤 특별한 정책이나 한 당사자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노동운동은 ‘반대와 저항’을 기본으로 하되, ‘형성 전략’을 주도할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노동은 산업 정책에 개입·참여하여 일자리를 지키고, 노동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공공적 책임을 구현해야 할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사회적 대화 자체의 특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위기 상황에서 추진되는 사회적 대화는 어쩔 수 없이 상층 교섭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 때문에 협의 및 교섭 내용이 하나하나 공개되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사회적 대화 추진의 기본 목표와 원칙이 조직 내에서 공유되어 결정되면, 그 세부 내용과 결과는 협상을 추진하는 지도부에 위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아래로부터 경험을 통해 형성된 ‘현장 민주주의’를 조직의 원칙으로 하는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추진 초기부터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립했어야 한다. 논의 결과를 조직의 어떤 단위에서 어떻게 추인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사전 정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는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협의틀 확장 없이 기업별노조체제 극복 없다
 
과정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의 사회적 대화 추진은 성사되지 못했다. 민주노총에 부여된 사회적 책무에 대한 비판과 반(反)비판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위기의 본질이 ‘87년 노동체제’에 있다고 본다. 기업별노조의 조직구조와 교섭체계가 지배적인 한국 노동관계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는 지속적인 논란에도 추진될 수밖에 없다. 중앙차원에서 조율되지 않는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는 노동운동이 그토록 외쳤던 노동계급 연대가 전진하지 못하도록 하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기업별노조체제의 극복은 한국 노사관계의 핵심 과제이다.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중앙·산업·지역 차원의 교섭(협의) 틀의 확장이 필요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적 대화를 “사회·경제 정책에 관하여 정부·사용자·노동자 대표가 참여하는 모든 형태의 교섭·자문·정보 교환”이라 정의한다. 사회적 대화는 공공정책 결정 과정에의 노사 참여보다 더 넓게 기업·산업·지자체·국가 수준에 이르는 노·사·정의 다양한 대화(협의)다. 물론 사회적 대화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에 대한 확고한 존중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회적 대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본성적 요구이다. 올해는 민주노총 창립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역할과 책무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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