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해 인사] 격랑의 노동상황을 헤쳐나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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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 인사] 격랑의 노동상황을 헤쳐나가는 길

() 2,399 2023.01.09 09:00

[2023년 새해 인사] 격랑의 노동상황을 헤쳐나가는 길 



작성: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송구영신(送舊迎新)-임인년을 보내고 계묘년 새해를 맞는다. 옛말에 가는 해는 잡지 말고 오는 해는 막지 말라고 했던가, 새 다짐으로 희망을 얘기해야 하겠지만 상황은 결코 녹록지가 않아 보인다. 여러 어려움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노동운동을 세차게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노동자의 14% 정도에 불과한 노동조합이, 그마저 갈라져 있는 상태에서 노동의 새벽을 밝게 여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현 정부의 서슬푸른 공세는 시민운동까지도 겨누고 있다.   


윤 정부가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근거는 ‘노동개혁’이다. 노동개혁을 교육, 연금보다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판에 노동조합이 반대하고 나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중심 대상이지만 한국노총도 노동정책에 거부감을 표출시키고 있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아무튼 윤석열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감은 여러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노조개혁’까지 확대되었고, 이를 감당해야 할 노동조합으로서는 또 하나의 어려운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도 박근혜 정권도 노동개혁을 내세웠고, 자본의 요구를 반영한 노동 유연화를 반대하는 민주노총을 세차게 몰아붙였다. 종내에는 한국노총마저 반발함으로써 개혁은 파탄나고 말았지만. 법과 원칙을 내세워 노동기본권 행사를 탄압하는 일은 늘상 있었고 노조가 기득권 세력이라거나 ‘노동귀족’이며 ‘귀족노조’라는 비판도 이미 나왔던 얘기다. 다만 노조를 기업·관료 부패와 동렬에 세워가며 개혁대상으로 매도한 것은 처음인 듯하다. 하지만 노조회계는 이미 1990년대 초 노태우 정부가 전노협을 칠 때 타격 대상이 되었었다. ‘체제전복을 노리는 좌경불순세력’으로 전노협을 몰아 가입노조에 대한 업무조사를 강행한 것이다.


사태의 추이는 명확해지고 있는 듯하다. 많은 논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이 나라경제의 활성화와 발전이라는 나름의 비전을 내세웠으나, 그 실체는 대자본이 주도하는 낙수효과의 시장주의·성장주의 정책의 재현이라고 지적했다. ‘시대적 의제’가 유실된, ‘노동없는 대선’ 과정에서 예상됐던 우려가 현실화한 것으로, 야당은 ‘MB 시즌2’라거나 박근혜 정권의 ‘줄푸세’의 재탕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윤정부는 거침없이 당초의 정책기조를 추진해 나갔다. 이어 노동정책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은 고사하고 이제 갓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겠다는 소리도 나왔다. 최저임금 시급은 겨우 460원(5.06%) 올라 9,620원에 머물렀고 업종별 차등 적용 계속 검토라는 개악 단서가 붙었다. 아울러 ‘노동개혁’의 구도가 공개됐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혁파를 통한 노동 가치의 존중이 그 근거였다. 핵심 주제는 노동의 유연화, 곧 시대변화에 맞춰 노동시간 규제를 풀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상체계로 직무성과급 임금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래노동시장위원회가 노사당사자는 배제된 채 정부가 선정한 12명의 전문연구자들로만 구성됐다. 자본의 지지와 기대의 목소리가 높은 한편에 노동소외의 우려와 불만 역시 크게 증폭되었다. 노동조합은 정부의 노동개혁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계의 소원수리’에 불과하다는 강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부는 오불관언, 노동개혁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강조했다. 이태원 핼러윈 대형참사에 대한 사회여론의 악화에도 정부의 기세는 여전했다. 거제도 조선해양하청노조와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책을 쓰고 대통령 지지율이 상당한 정도로 높아졌다는 여론조사가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윤정부의 대노동공세는 권력과 자본이 노동통제에 사용해온 전통적인 분할통치전략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노동자계급 내부에 존재하는 각종 이해관계를 활용하여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일반 국민들로부터 노동운동을 고립시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지난해 주목되었던 비정규직 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저항을 강하게 억눌렀던 일도 그 한 예일 것이다. 다만 그 대응은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장치 마련이 어려운 상태에서 날로 증가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을 저지하려는 의도도 분명히 내포돼 있어 보인다. 최근 중노위가 하청노동자와 원청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은 인정하면서 단체협약 체결과 단체행동권은 부정하는 판정도 그 일환이라는 지적도 있다. 분할지배전술은 더 한층 적극적이고 정교하게 다듬어져 활용될 것이다.


권력의 노동개혁 의지에는 유형·무형의 가능한 수단 방법이 총동원될 것이다. 개혁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다양하고 세련된 논리와 현란한 수사가 보수언론과 지식인들을 앞장세워 어지럽게 펼쳐질 것이다. 물론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률 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자본의 위력있는 포섭전략이 의회정치에 도사리고 있고 행정 수단에 의한 정책 추진의 위험성도 상당한 정도로 열려 있다. 권력과 자본이 설정한 ‘법과 원칙’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이나 노사자치, 노동운동의 자주성, 노동자의 이성의 우위에 군림하는 상태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지속될 전망이다.


노동환경의 변화도 염려스럽다. 세계경제가 전면적으로 침체하는 가운데 나라경제는 낮은 성장에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악재가 가로놓여 있다. 설상가상으로 남북미관계는 날로 악화하고 기후위기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적 당면문제로 바짝 다가와 있다. 자본에 의한 구조조정의 압박이 강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미 기획재정부는 ‘효율화’를 명분으로 공공기관 정원의 2.8%인 12,442명을 구조조정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촛불항쟁으로 권력의 횡포를 막아냈던 민심의 바다는 아직은 깊은 심연에서 들끓고 있는 듯하다. 


어느 것 하나 기대기 어려운 노동환경이지만 정확한 해답은 문제 자체 안에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내부의 동요와 분열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차단하는 것이 우선 중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 요구나 주장의 정당성을 거듭 확인하고 조합원들에게 확신시키는 일과 함께 조직간 연대와 통일을 강하게 실현해내야 할 것이다. 보수 언론, 지식인들을 총동원한 권력과 자본의 이념 공세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사회적 의제를 선점하여 국민의 지지를 확장하는 일 또한 미룰 수 없는 현안이다. 노동3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최우선의 임무이거니와 법률 제도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근로기준법의 전면적용, 차별금지법 및 노란봉투법 제정 쟁취, 최저임금법 개악 저지 등등 과제가 그것들이다.


어느 과제 하나 만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노동역경의 조건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쩌면 숙명과 같음을 노동운동 역사는 말해준다. 정부가 개혁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노동가치의 존중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실현될 수도 없거니와 노사관계의 안정이 한쪽의 강제로 실현된 역사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의 교훈은, 노동운동은 스스로 당면한 과제들에 과감히 도전하여 해결해야 하고 중장기적인 전략 전술을 올바로 세워 나가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