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평등한 시민권과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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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평등한 시민권과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

김종진 0 3,850 2019.03.16 11:24
* 이 글은 경향신문에 매월 연재하고 있는 <세상읽기>(2019.3.15) 칼럼입니다.


[칼럼] 평등한 시민권과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누구나 복지제도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어떤 복지국가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기초노령연금이나 아동과 청년수당이 대표적 사례다. 각 정책 모두 도입 초기 사회적 논쟁이 많았다. 개별 정책 모두 시민이라면 누려야 할 권리라기보다는 하나의 조건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나 구조조정이 발생하면 실업급여를 적용받는다. 그러나 그 실업급여제도가 만들어진 역사는 길지 않고 적용자도 일부에 한정된다. 이런 현실에서 빈곤 및 재취업 등을 위한 다양한 사회수당을 생각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그런데 지난 3월5일 노사정 합의로 ‘한국형 실업부조제도’가 발표되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에게만 적용이 가능했던 실업급여를 저소득 구직자와 자영업자에게까지도 확대한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저소득층 대상 매월 50만원씩 6개월간 지급된다. 그간 도움을 받지 못한 미취업 구직자는 물론 전직 자영업자와 경력 단절자까지 혜택을 받게 된다.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생계지원과 고용서비스가 결합된 형태다. 일정한 소득을 기준으로 대상자가 좁혀진 한계가 있지만 사회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시장 위험과 고용불안정은 몇몇 지표들이 확인해 준다. 일터에서 비정규직이나 자영업 노동시장은 매우 심각하다. 1년 미만 근속자(31.3%)가 많다보니 사회보험(37.8%), 교육훈련(38.4%), 유급휴가(24.5%) 적용자는 10명 중 3명이 고작이다. 직장에 취업해도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 비율은 20.1%에 불과하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나라와 비교하여 1인 자영업자도 2배(15.4%)나 많다. 이런 현실에서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국가는 인간이 삶을 유지하고 사회적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살아갈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지방정부의 몫도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 발표한 시민의 사회적 안전망들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서울시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에게 유급병가를 지원한다고 한다. 생활임금 수준으로 10일 정도 지원한다고 하니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운 저소득 시민에 대한 소득지원 성격을 담고 있다. 특히 열심히 일했음에도 사업을 접게 된 소상공인의 폐업 지원을 위한 채무감면이나 지원제도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필요한 정책 중 하나다.

게다가 올해 7월부터 비정규직 대상 휴가비 지원(25만원)도 시행한다.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중소기업 휴가비 지원제도(20만원)가 정규직이 주 대상인 반면, 서울시는 저임금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노동자가 대상이다. 서울지역 비정규직 휴가사용률이 1주일 남짓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의미가 있다. 1936년 처음으로 2주간 누구나 연속으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프랑스에 비하면 80여년의 격차다. 그 밖에도 프리랜서 지원이나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수당과 같은 제도는 “어떤 신분이나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시민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철학을 담은 것으로 봐야 한다.

영국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라는 영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에서 고용센터 공무원은 질병수당을 신청하러 온 주인공에게 오로지 원칙과 기준 그리고 절차만 강조한다. 고용센터에서 질병수당을 제공하는 데 있어 개인의 ‘잘못’과 사회의 ‘잘못’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서울시 정책들은 시민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다른 지방정부에서도 다양한 정책들이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더 구체적으로’ 전달되면 좋겠다. ‘평등한 시민권’은 소득, 거주지 등의 기본적 욕구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다만 정책 설계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원칙도 있다. 시민의 안전망은 시혜와 배려의 관점이 아니라 권리와 평등의 관점이어야 한다. 몇 년 후 한 지방정부에서 시민보험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142031005&code=990100#csidx0a1b8200f33913883791cbfce685a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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