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화기를 내려 놓고 숨쉴 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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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화기를 내려 놓고 숨쉴 틈을

김종진 0 3,189 2019.12.30 03:56
* 이 글은 경향신문에 매월 1회 연재하고 있는 <세상읽기>의 2019년 12월 27일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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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전화기를 내려놓고 숨 쉴 틈을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참고, 인내하고, 적응하는 직업”으로 지칭되는 일이 콜센터 상담 업무다. 최근 언론에서 보도된 화장실 이용도 허락을 받거나 순번제 운영은 충격적이다. 공공부문 콜센터에서도 휴게시간조차 보장하지 않는 곳이 많다. 콜센터 상담사 거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기에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감정노동이나 괴롭힘 문제는 지난 수년 동안 사회적 문제로 제기된 바 있다.

콜센터 법률 위반은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곳에서 주로 확인된다. 어떤 곳은 연차휴가조차 감점제도를 통해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매월 마지막 주에 연차휴가를 신청하되, 변동은 2회까지만 가능하다. 3회부터는 횟수별로 성과평가에 감점을 받는다. 근로기준법상 보장받아야 할 권리조차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한 곳에서는 상담사 콜 수와 통화시간에 비례하여 휴게시간을 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비스 레벨 제도는 쉴 틈조차 없이 일하도록 하는 ‘인간의 상품화’를 확인시켜 준다.

고객만족과 서비스 향상을 위해 운영 중인 인센티브와 평가방식은 노동통제의 대표적 수단이다. 상담사 콜수, 통화시간, 1차 처리율, 상담이력 충실도, 업무 테스트 등이 실시간 혹은 주기적으로 모니터링된다. 고객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곳에서는 매월 상담사 업무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나머지 공부라고 하여 ‘틀린 문제 두 번 써오기’와 같은 숙제도 있었다. 공공부문 콜센터에서조차 ‘고객만족’과 ‘응대율’이 평가의 전부로 인식되고 있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과도한 비인격적 운영방식은 비판받아야 한다. 특히 콜센터 사례관리 및 평가과정(QA) 형태인 ‘콜 코칭’ 과정에서 인격모독이 자행된다. 예를 들면 특정 민원 사례를 지목하고 동료 비판자에게는 포상을 주고, 해당 상담사에게는 1주일간 교육을 시킨다. 상담사가 코칭룸(유리문)에 불려 들어가면 “너는 무슨 생각으로 출근을 하냐?” 등 인격모독을 감내해야 한다.

지난 2년 새 공공기관 전체 민원 발생(VOC) 건수는 143만건, 감정노동 발생건수는 3649건 정도다. 콜센터 업무 특성상 악성·강성 민원은 상담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문제다. 2018년 10월부터 감정노동보호 법률이 시행 중이지만 정부 각 부처 및 공공기관에서조차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감정노동자 보호 홍보물 게시와 음성·안내방송 등은 큰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닌데, 공공기관에서조차 도입률은 23.5%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120다산콜재단 설립 이후 고용의 질 개선은 물론 감정노동 해소 방안도 실행하고 있다. 상담사의 감정노동 해소를 위해 적정 휴게시간을 보장하고, 건강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무조건적인 친절교육이 아닌 현장 업무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용자로부터 성희롱이나 폭언 등이 진행될 경우 상담사에게 ‘끊을 권리’를 부여했고, 악성 민원인은 서울시 차원에서 법률 대응을 하고 있다. 서울시의 정책실행 이후 악성민원이 대폭 감소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그 답을 준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공공기관과 지자체들에서는 콜센터를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려는 곳이 많다. 외부 민간위탁 운영이 전문성과 효율성이 높아 선택한다고 하지만, 하루에 130콜을 받도록 하면서까지 노동자들을 쥐어짜내는 방식이 과연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다. 노동자 착취를 통한 고객만족이 과연 올바른 공공행정인지 반문해야 한다. 심지어 정부의 공공부문 민간위탁 가이드라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새롭게 시작하는 콜센터 업무를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어느 순간 효율성이 공공행정에서 좋은 모델로 인식된 지 오래다. 현재처럼 1년 365일, 24시간 콜센터 운영은 정말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콜센터 상담사에게 전화기를 내려놓고 숨 쉴 틈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이제 공공행정 민원서비스는 효율성이 아닌, 공공성과 전문성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프랑스 파리나 독일 베를린처럼 전문공공행정 서비스를 추구하는 콜센터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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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262054045&code=990100#csidxe0434584da2a054b39bc59e664405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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