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턴, 은폐된 노동의 위험성
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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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1 07:38
이 글은 2017년 3월 18일 경향신문의 인턴 관련 칼럼입니다.
지난해 대기업 아르바이트 임금체불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대기업 통신사 콜센터 실습생의 죽음까지 접해야 했다. 산학협력과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자본의 이윤 사유화 앞에 노동의 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규 직원도 감당하지 못할 업무를 실습학생에게 거의 동일하게 맡긴 탓이다. “콜 수를 모두 채우지 못했다”며, 자괴감이 든 상태로 부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 노동시장에서는 인턴이나 실습생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소위 ‘열정페이’라는 말이 나온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뚜렷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불명확한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곳들은 민간과 공공부문을 가리지 않고 만연된 상태다. 인턴이나 수습 혹은 실습은 이제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심지어 지자체 민간위탁 시설은 예산부족과 일 경험이라는 미명하에 다수의 인턴이 정규직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2016년 고용노동부는 ‘인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불안정한 청년고용과 실업 문제를 일부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실습생, 수습생, 인턴 등 교육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일 경험’과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를 구별하는 데 있다. 정부 발표로 인턴은 1일 8시간, 주 40시간 근무를 지켜야 하며, 연장·휴일·야간 근무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인턴 기간도 6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업무 난이도가 낮은 경우 2개월을 넘겨서도 안된다. 또한 기업 내 상시 종사자 비율 10% 이상의 인턴을 모집할 수도 없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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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인턴은 ‘이력서의 첫 줄’ ‘경험을 쌓는 아주 바람직한 방법’ 등 인턴십을 표현하는 흥미로운 표현들로 넘쳐난다. 요즘 학교에서도 교육과정 중 하나로 다양한 실습제도를 운영한다. 문제는 ‘직업 세계로의 입문’이라는 좋은 글귀와 학점이라는 명목으로 무보수이거나 최저임금도 안되는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인턴이지 노동력 착취인 셈이다. 다시 말해 법의 사각지대에 내동댕이쳐진 ‘법적 소외’ 상태 신분이다. 인턴은 노동시장에서 열정을 빌미로 저임금 노동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인턴은 조직 내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그림자 같은 존재다.
우리는 ‘인턴’이라는 단어가 지닌 모호성에 착목해야 한다. 수습이나 실습 혹은 훈련생 등은 인턴과 달리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다. 이 때문에 모두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 반면 인턴은 인턴십이라는 제도에 참여한 사람이니 법률적 용어는 아니다. 열정페이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턴십은 실질적 경험이라는 보상이 따르긴 하지만 보수가 없으므로 ‘베푸는 행위’이고, 노동력과 경험이 맞바뀌므로 ‘물물교환 행위’이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므로 ‘신용적립’이라는 비자본주의적 거래에서나 가능한 유형이다. 즉 물질세계 중심인 현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인턴십이라는 제도가 노동과 교육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꿰뚫어야 한다.
반면에 투자가치가 높은 인턴십 프로그램일수록 자리 경쟁은 치열하다. 출세의 보증수표가 되는 ‘명문’ 인턴십 프로그램은 돈과 명예를 보유한 극소수 특권층 자녀들의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우리 사회도 폼 나는 기관의 인턴은 학연과 지연이 없으면 할 수 없을 정도다. 잘나가는 국제기구에도 어깨에 힘깨나 주는 부모를 둔 자녀들이 인턴십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청년실업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공정한 취업 기회’를 위한 모범적 인턴십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간 정부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왔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 기사화된 열정페이 사례들을 보면 노동력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 채용을 미끼로 부당한 근무조건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 정규직 전환과 같은 묵시적 고용관계를 약속했음에도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대기업부터 지자체까지 인턴 다수 고용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지자체 민간위탁 인턴 다수는 법률적 위반을 고려하여 단시간 일만 시키는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지자체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상담심리사들이다. 현행법상 주당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는 주휴수당과 사회보험 의무적용이 아님을 악용한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시간제 일자리와 관련하여 1994년 ‘동등대우 원칙’을 채택한 바 있고 사회보장제도를 권고(제182호)했지만,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 아래에서 인턴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은 이들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인턴과 같은 과도기 노동의 증가는 ‘제도적 사각지대’와 ‘실질적 사각지대’의 확대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내 사회적 배제와 차별 같은 다차원적인 노동인권침해 문제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같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인턴규정이 가능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수습이나 인턴 직원에게 채용 및 고용을 조건으로 일정한 성과를 요구하는 기업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 기업들도 인턴 채용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대기업 고용형태 공시현황(워크넷)에 인턴 규모를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인턴 다수 사업장을 중심으로 수시근로감독을 통해 위법적 고용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일을 시켰으면 인턴에게도 최저임금 등 공정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과도기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공유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장에서 보편적 노동인권이 향유될 수 있도록 단기적·중장기적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사실 인턴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이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체의 안정과 인권이 보장받을 때 가능하다. “세상은 권리 없는 인간을 물건처럼 취급한다”는 한 법학자의 말처럼, 이제 우리의 일터에서 노동의 권리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3162113015&code=9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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